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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화역사박물관 - [인천 강화군] 강화역사박물관

by korean-macgyver 2025.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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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을 보면서 어색한 검풍으로 섞인 우리는 곧 근처에 있던 강화역사박물관에 들어갔다.

 

특별전이지만 전시공간이 작은지, 아니면 모르는 오리지널 유물 정도는 전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부 인쇄책이었다. 그것도 퀄리티가 조악한 인쇄책… .

 

그래도 이렇게 미술품에 사용된 광물을 소개하는 것은 좋았다.

 

2층에 오른 2층부터 본격적으로 강화 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이 잇달아 나온다.

 

세계 어느 역사박물관에 가도 시작은 선사 시대, 구석기 시대다 요산 특별전만 가서 일반 전시실은 찐다.

 

솔직하게 볼 때마다 느끼는데 지역도 달라 환경도 다른데 어떻게 사용하던 유물이 천편일률적일까. 사용한 반월석의 검이나 차이는 없다.

 

강화도가 고인돌에서 매우 유명한 것에 비해 청동기 시대 주택지 유적의 수는 적은 편이다. 그래도 발견되는 흔적은 주로 강화도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추측.

 

청동기 시대에도 강화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흔적.

 

고대에는 한강을 차지하는 나라가 바로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하는 나라였다. , 한강을 차지한 순서를 기억했다.

 

《삼국사기 삼국사기》에 기록된 강화도. 중요도에 비해 의외로 적게 등장한다. 본래의 강화는 여러 나라가 얽혀 있던 장소였으며, 이름도 각각이었다. 백제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제외하고, 고구려가 강화를 점령했을 때는 아마구치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신라진흥왕이 강화에 진출하면서 빼앗기게 되었고, 경덕왕대에 이르러 해구 군, 고려태조시대에 처음으로 강화현으로 개칭되어 현재 이름을 갖게 된다.

 

이제 통일신라 시대에 오면 불상도 보이기 시작한다.

 

토기는 이미 질리기 때문에 너무 지나친다.

 

강화도 역사 타임라인에 당당히 기재되어 있는 연산군 유배 ㄷㄷㄷ.

 

강화도에 있던 정족산 사고 내의 왕실계보를 보관하던 선원각의 현판이다.

 

강화도에 관한 공문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임명서, 무과급제 홍패, 계구 등의 공문서였다.

 

강화도의 리즈 시대가 언젠가 누가 물어본다면 아마 고려시대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고려시대에는 고려청자다!

 

크고 눈길을 끈 청자상 감모단 문화분. 산세베리아를 키우면 잘 성장합니다.

 

미즈즈키 관음도(미즈키 켄논)? 인물은 수월 관음이었다.

 

청동은입사 가만(靑銅銀入絲香垸). 보존상태나 가치가 다소 멀어져서 그런 형태다.

 

고려를 떠나 조선에 간다.

 

아까 정욕상 사고 현판 보았지만 여기에 추가 관련 기록이 있다.

 

강화도를 순찰한 암아 어부가 순조롭게 올린 절목.

 

박물관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강화도 역사의 클라이맥스, 병인양양과 신미양요을 다루는 전시공간에 이르렀다. 받고도 하나의 문제, 한 지문은 반드시 나오는 클래식 테마이다.

 

병인양예로 프랑스군을 격퇴한 양홍수 장군과 신미양요로부터 미군의 침입에 대항해 장렬하게 산화한 어재연장군의 소개문.

 

신미양요에 참전한 미군 소장 윈필드 스콧 슬라이(Winfield Scott Schley)가 기록한 전쟁 회고록 'Forty-five Years under the Flag' 신미야뇨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승조가 물고기 재연에 내린 교지. 어재련을 병조판서 및 지의금부 삼군부 훈련사로 증직하는 내용이다. 안내문에는 순조로운 27년(1827년)에 내렸다고 나와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 같다. 물고기 재연이 1823년에 태어났지만 말이 안 된다. 4세에 병조판서를 붙인다니 인생 2번째도 불가능하다. 나의 생각에는 신미양요이 1871년에 일어나, 어재연이 당해에 전사했기 때문에 1872년에 조정으로 사후교지를 내린 것을 잘못 쓴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27과 72를 잘못 바꿨다면 이해가 간다. 너무 빨리 고쳐주세요~

 

마지막은 강화도의 농기구? 가 나온다. 근현대 유물입니까?

 

박물관이 조금 작아서 박물관의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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