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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림사 건칠보살좌상 - 우리나라 ‘차문화’ 근경주 기림사

by korean-macgyver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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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 건칠보살좌상

한때는 불국사보다 큰 사원이었다 함월산 밑단의 고국사

오늘은 내 거주지에 인접한 신라천년의 고찰인 경주 삼림사를 대답하기 위해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만, 10년전에 처음 와서, 이번이 2회째의 방문입니다.

 

승용차 주차비 1,000원에 입장료 3,000원을 내고 입장하는데 다소 비싼 느낌이 듭니다 OPEN TIME 08:00~17:00

 

주차장은 주말에 유명한 사원이며, 빈 곳을 찾기 어려운 정도로 가득합니다.

 

함월산의 기림 팔경도 키림사가 위치한 함월산 함월은 북서쪽에 위치한 토함산이 달의 정기와 빛을 발하면 그들을 흡수하고 담는다는 의미를 가진 곳입니다.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있던 도중, 스켈레톤의 일화를 통해서 얻은 원효스님이 여기에 다녀 왔습니다. 그때 전국 구석구석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원마다 전설을 하나씩 만들어 떠나는데 정말 고생했다고 생각합니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의 함월산 동남쪽에 위치한 기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로 삼국시대(신라선덕여왕 12년, 643년) 천축국(인도)의 승 창건 당시에는 하야시이지라고 부른 것을 후일 모토키가 중창하면서 키림사로 개칭했습니다 기림사는 옛날, 불국사를 말사에 머물 정도로 긴 역사를 가지고, 현재는 비록 불국사의 말이 된 처지입니다만, 여기에는 대적 광전 등 5점의 국보가 있는 보석과 같은 사원입니다.

 

한때 불국사를 비롯해 인근 30여 개의 사원을 인사에 데리고 있던 키림사는 황폐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불국사의 말이 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오젠지 각성이 주석할 정도로 상당히 비중이 있던 사원입니다. 근대에 이르면 전국을 대표하는 30개의 사찰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숲에 우거진 길을 잠시 걷는데 이런 숲길을 넘어좋아 아침부터 피톤치드 듬뿍 마시고 걸어

 

잠시 후 넓은 빈터의 3가지가 나오는데, 안내판의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입장해 답변을 마친 뒤 왼쪽으로 내리는 순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림사는 크게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지만, 낡은 전각(진남루, 대적광전, 약사전, 응진전)이 남아 있는 공간인 舊ガラム지역(오른쪽)과 최근 새롭게 조성된 천불전, 유물전시관 등이 있는 신가람지역(왼쪽)으로 나뉩니다.

 

키림사는 한국 차문화의 뿌리이며, 키림사 안에는 차를 볶는 최고의 물로 5가지 맛을 내는 명물의 약수인 오정수(오타쿠수, 명안수, 화정수, 감로수, 장군수)가 있는 사원으로 유명합니다.

 

천왕문으로 향하는 도중에 푸른 삼나무, 대나무와 연마에 깔린 박석이 조화되어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천왕문에 들어가 삼림사에 깊숙히 들어갑니다.

 

천왕문에는 동서남북에서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는데, 험상 굳은 얼굴을 한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고 문을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2천년의 역사를 가진 사원임을 알 수 있듯이 세월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가람 배치가 눈에 띈다 마치 묵향이 진하고 밴 일폭의 수묵화를 보는 느낌마저

 

길의 왼쪽에는 차를 다리로 하는 오종수의 명수가 아니지만, 무명의 약수가 흐릅니다. 곳곳에 약수가 보이지만 물이 풍부한 사원이라고 느낍니다.

 

최초로 맞이하는 것은 종언소로, 김림사의 안내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실내에는 다양한 차나 사원 밖에 없습니다. 삼림사를 방문하는 모든 관람객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종무소 앞의 화단에서는 여름 꽃의 제왕격인 수국이 웃고 웃으며 손님을 맞이합니다.

 

항상 집 뒤뜰처럼 아늑한 친숙한 분위기입니다.

 

옆에는 한 단계 정도 높은 위치에 위치한 가람 지역의 梵鐘樓이 보이고, 그 봉오리 아래에는 수국의 꽃밭이 형성되어 멋진 포토 존이되어줍니다.

 

잠시 후 글자 모양으로 오랫동안 좌우로 서있는 전각인 진남원이 보입니다. 임진왜란 때 군사지휘소 겸 승병교육과 훈련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각 전각마다 설명이 담긴 안내판과 기둥 연(기둥 :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쓰는 문자로 건물의 품격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만, 제대로 전각의 이력을 읽어 보겠습니다.

 

진남문은 날씨가 뜨겁고 시원하게 열렸다.

 

진남원은 남방을 진압한다는 의미로 여기서 남방은 일본을 가리키고 남동해의 왜구를 진압하려고 하는 호국불교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지나가는 길에 위치한 김림사는 경주지역 방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김림사 인성수님이 승군 279명을 데리고 활동했다고 합니다.

 

진나물 서쪽으로 돌아오면 넓은 절집정원이 나오는데 포스가 느껴지는 500년 이상의 보리나무가 가지를 뻗어 법신의 모습으로 파랑을 내뿜습니다.

 

넓은 절정당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 대광 적전과 약사전, 동쪽에 목탑지, 서쪽에 응진전, 남쪽에 진남루가 「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석탑 아래에서는 오종수 중 하나로 음용하면 기골이 장대해져 힘이 넘치는 장군수가 인근에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조선시대의 한 사람이 여기서 역적 모의하여 발각한 뒤 나라에서 샘을 묻어버린 적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장군이 태어날까 두려워 수도를 막아 버렸다는 설도 있습니다만, 명물은 명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3층 석탑 뒤에는 진진전(500나한전)이 있습니다.

 

전각 내부에는 오백나 한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오백라 한상이란 깨달음을 얻어 알라한과를 이룬 불교 수행자 500명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을 말하며 영조 5년(1729년)에 조성되었습니다.

 

오백의 부처님이 각각 천대 만상에 조각되어 있습니다만, 크기를 비롯한 수인이나 얼굴의 표정, 그리고 세세하게 눈이나 코의 크기까지도 다르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부처 뿐만이 아니라, 삼사오오 모여 있지만, 단지 불타상 500개를 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부처를 조각하고 모은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각각의 특징을 세세하게 또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했는지 놀라움에 따라 그 시대 장인들의 진심과 솜씨에 경의를 표합니다

 

응진전 옆에는 기림사의 본전인 대적광전(보물 415호)이 있습니다만, 오랜 세월과 같이 단청의 색이 바라 보다 낡고 금당답게 느껴집니다. 대 외광전은 지혜의 빛으로 세계를 비추는 비로자나 삼존화를 모시는 법정으로, 배류기둥의 다포식 단층조합 지붕의 건물로 처녀로 장대합니다. 신라선덕여왕 때 처음으로 지은 후 8회나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천년을 넘는 세월 사이에 나무의 빛이 원했지만, 원형으로 테를 두드리거나, 괘선 없이 격자로 정교하게 짠 꽃 호랑이(장작)가 이채롭고 아름답지 않습니다.

 

지금은 법정에 들어가려고 해도 체온을 체크하고 손 소독이 필수 시기입니다.

 

대광 적전 중, 소조비로자나 삼불좌상(보물 958호)이 모셔지고 있습니다. 중앙의 비 로자나블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제사와 아미타 여래로 구성된 삼불상입니다. 제작 연도는 1564년(조선 초기)에서 m 이상의 큰 규격에 뚜렷한 이목구비, 간결한 세부 묘사가 특징입니다.

 

소조비 로자나블 복장으로 대반야경 등 고려시대 금, 은사경 14권과 조선시대 불경, 부처님 진신사리 4과 등 거대한 전적 등이 발견됐지만, 이복장물은 보물 95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86년 문화재 도굴범에 의해 도난당한 유물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대적광전의 마지막 보물문화재(1611호)로 삼불상 뒤에 있는 후불탄화인 빌로자나 삼불회당입니다. 제작 연도는 1718년이며, 삼베로 만들어져 있어, 찻차나불, 아미타불, 약사불을 3폭으로 나누어 그린 것입니다.

 

대적광전의 우측 영사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경북문화재 자료 252호) 1600년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면 3간, 측면 1사이의 규모로 대광적전에 비해 소규모입니다.

 

내부에는 약사 여래불, 닛코 보살, 월광 보살의 삼존화로 모셔져 있습니다.

 

내부 좌측 벽면에는 16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차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인 약사전의 후루타 벽화가 있습니다. 이 벽화는 한국차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급수 본다(납땜) 벽화 이를 통해 우리 차 문화가 종종 1,200년 전에 중국에서 씨앗이 건너온 것이 아니라 2,000년 전부터 인도에서 뿌리를 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차와 불교는, 불가결한 관계로 차를 끓여 마시는 것은 단순히 기호품을 즐기는 수준이 아니고, 차관에 물을 끓여 차를 우려해 맛을 음미하는 것을 불교 수행의 한쪽이며 도의경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키림사 차는 지난 1900년 중반까지 차의 북방 한계선의 차로 인식되고 있으며, 차향이 진하고 가장 늦게까지 수확하는 차로 알려져 승려들 사이에서 최고 품질의 차로 대접되고 있습니다.

 

대적 광전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최근 만들어진 신가람 지역에 올라갑니다 절의 사람들은 계단을 경계로 아래에는 「old 킬림사」, 계단 위를 「new 키림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계단을 오르면, 나란의 절정에 명물의 소나무가 보이고, 주위에 새로 지어진 전각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백그라운드에서는 함울 산이 마치 엄마의 물건처럼 몸과 마음을 쾌적하게 해 줍니다.

 

내부에는 이상한 모습의 천수 천안 관음 보살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관음전을 지나 큰 삼천 불전이 나옵니다.

 

전각의 이름대로, 내부에는 3천의 흰 불상이 본존화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지만, 한눈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울 정도로 장대합니다. 과거의 천불, 현재는 천불, 미래의 천불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응진전의 500나한상처럼 3천불전의 불상도 표정이 나의 각각입니다.

 

안쪽에는 삼성각, 명부전, 요사채 등 부속전각이 있습니다.

 

전각 주위에 불교의 상징인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 있습니다.

 

논소파, 백합, 꿀, 케나리, 무궁화, 개제초, 쿠사사케 등 수많은 꽃들도 기림사의 품격을 올려줍니다 승려들이 수행하기 쉬운 환경인 것 같습니다만, 계절마다 양을 물들인 야생화와 야생화의 향기가 산사의 조용함과 맞습니다

 

승려 부탁드립니다

 

오종수의 하나로 음용하면 폐부의 기운을 다스리고 마음을 조용하고 평화롭게 해 화이수가 있습니다.

 

아래에서 본 범정루도 또 다른 모습입니다.

 

푸른 하늘과 멋진 가고일과 조화로운 꽃의 조화로 지루한 절정의 분위기를 아름답게합니다.

 

화정당, 명부전 등 새롭게 지어진 전각이 이어지지만, 구가람 측에서의 감동과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까 생각합니다. 예전의 불국사를 비롯해 30여개의 사원을 말로 둔 이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이런 대규모 불사를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법정의 무소유 철학의 배경에서는 그다지 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왕의 길」이라고 하는 주위도도 괜찮다고 하는 이야기가 들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폭포까지의 일부 구간만 가기로 합니다.

 

담을 넘어 템플 스테이하는 건물입니다.

 

키림사는 레크리에이션형의 템플스테이의 좋은 예를 나타내는 사원입니다만, 연 1,000여명이 마음을 비우려고 키림사를 찾는다고 합니다. 한 번에 체류할 수 있는 인원수가 최대 50명이므로 사색하기에 최적입니다.

 

죽어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려고 한문무왕의 장례도이며, 신문왕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대왕암으로 향하고 있던 길이라고 신문왕호국행길이라고 불립니다 모차고르, 슬레길, 세수실 등의 길의 지명마다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코스는 왕의 길 주차장~모차골~스레재~세수방~불령~3길~용련 폭포~키림사(km/3시간)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신문왕이 따르는 충화효, 이 길을 걸은 조상들의 긴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햇살이 내리는 곳을 지나면 더 이상 울창한 숲이 그늘이되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옆에는 독중개라는 시원한 계곡을 만나지만 곧 뛰어들고 싶다

 

푹신한 토도로 계곡까지 넘어도 좋지만 다음에 다시 와서 왕의 길 전체를 걸어보고 싶어집니다.

 

잠시 후 약 10m 높이의 바위 언덕에서 물방울을 일으켜 시원하게 쏟아지는 용 폭포에 도착했습니다.

 

멋진 폭포에는 그러한 싼 전설 중 하나가 있습니다. 용용 폭포는 옥 장식이 용으로 바뀌어 승천했다고 합니다^^

 

폭포를 응시하고 쉬고 돌아와 머리 속을 가득 채운 완전히 잡념을 쏟아냅니다.

 

키림사로 돌아가서 보이지 않는 전각을 대답하는데 공양간에 밥의 냄새가 문을 넘어 새고 있습니다. 아이랑 배고파^^

 

공양간 맞은편에는 성보박물관이 있지만 불행히도 코로나에서 일시 폐쇄

 

성보박물관 중에는 기린사의 건칠보살 반가상(보물 415호)이 모셔져 있지만, 이 보살상은 건칠기법으로 조성되었다는 점과 반가자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귀중한 작품입니다. 또 목조 대좌에 묵시명이 있어, 이 보살상의 조성 연대가 1501년(고려 시대)인 것이 밝혀져, 불교 미술사의 기준작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월 당 김시원 영당이 있어 한번 들러보자.

 

용단 중에는 육체 중 한 명이었던 김시석 선생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장래가 탄망을 받았지만 폐지폐허 때 세상 죽음에 뜻을 버리고 불교에 귀를 기울여 전국을 유랑해 세조 10년 경주 김고산 용장사로 한국 최초의 한글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질렀습니다.

 

김시원, 용단을 나와서 즐거웠던 경주 김림사에서 사찰여행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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